생리학 수업중

1
간사한 것이 빗발무늬처럼 가볍다
누가? 누가? 누가?
모르는 곳으로 소리없이 사라졌다가
감춰진 절실한 구원은 되숭대숭한 내게 다시
그렇다고 내가 특별하단 뜻도 아니다
법원 앞 포장마차에서 찬 소주잔 내려놓자
받아 치는 양철판 소리와 같이
이 밤까지 허탈

2
아껴서 빨대로 커피를 마신다
과민성 대장염인데도 아픈 腸을 무시한 채
습관에 약한 입으로
그것이 무슨 담보라도 되는 양
몸이 먼저 원하는 무서운 중독성 탐닉

3
일요일 교회 앞에서 가족을 기다린다
예배가 끝나는 시간은 점심 바로 전
판암면옥에서 비빔냉면과 온면으로
몸무게를 늘려 놓고선
절대비밀이라며 아이들을 끌고 가는
산속에서 열리는 음악회
가랑비 날리는 습기 자욱한 영국사
그곳으로







4
와인축제에선 포도가 왕이다
일교차가 심한 덕에 당도가 높다면
꼭 맞는다
고통을 짜서 즐기는 나랑
아침 대신에 양복 주머니에 넣어온 캠벨 포도는
까칠한 입맛을 돋구지 못한채 일회용 컵 속으로 밀려나고
널 먹는 것도 잔인한 감정
기도의 약발

5
무(舞)는 고깔에 감춰진 채
어느새 문밖으로 흰 장삼끝이 살짝 나와
여운을 가진 날카로운 턱선
내려 앉은 슬픈 눈빛과
문지방 사이에서 따로 만나다가
장삼 날카롭게 펼쳐 하늘을 차고 올랐다가
바람타고 사뿐 내려오는
순식간에 이승과 저승을 왔다 갔다
내내 보이지 않는 버선은
또 다른 세상을 향한 비스듬한 몸짓
깜짝하는 사이에
뒤로 젖혀 쓰러지며
다시 밖으로 나온 긴 하늘거리는 긴 자락
날아갈 듯 펼쳐지는 탈속의 사위
감춰진 채 난출난출 서있다.